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

작년에 아동부 교사를 한적이 있다.

그때 한아이가 예배당 맨 뒤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보고 가서 말장난을 하고 놀아주었는데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키가 너무 커서 키큰애라는 별명이 붙은 아이였다.

지금은 아동부를 나오게 되어서 많은 아이들을 내가 섬길 수 없으나 그 키큰애는 교회 1층에서  어른 예배가 끝날때 나를 기다리어 같이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 아이도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으신다. 이렇게 혼자서 교회를 나오는 아이는 흔하지 않다.  나의 어릴적 일들도 생각나서 그 아이에게 더 관심이 쏠리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혼자 교회를 다니는 것은 많은 상처를 받고 돌아서기 쉽다.

나는 참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그것을 본 어떤 목사님은 내가 장로님이나 권사님 아들쯤 되지 않나 생각했나보다 다정하게 다가와서 부모님이 누구시냐 물어서 교회를 다니지 않으신다 했더니 그 뒤로는 나를 쳐다도보지 않았다.

그리고 커서는 환경미화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회장, 부회장이 전부인 (모든 사람이 직책을 맡아서 교회일을 하였다.) 그 부회장이란 자리를 사람들이 내게 이름을 올렸더니 교회를 잘 나오지 않는 장로님, 권사님 아들들이 와서 나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까 그것은 안된다고 반대를 하였다. 그게 뭐라고 안해도 그만인것을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안된다고 반대를 하는지 참 씁쓸했다. 결국은 부회장을 하기는 했다. 그때 고맙다고 했지아마..

또 더 어릴적에도 혼자 교회를 다녔는데 예배가 끝나면 빵과 우유를 주었다. 사실 그것을 먹고싶어서 교회를 다녔는데 모든 아이들이 줄을서서 그것을 받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내차례에 빵과 우유가 한개가 남았는데 어떤 어른이 와서 이건 우리 애거라며 내 앞에서 그것을 뺏어서 가져갔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서서 집에가려는데 아마도 전도사님인 듯한 사람이 자기 빵과 우유를 내게 주었는데 그 뒤로는 교회를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커서도 사람들이 거짓증거해서 비난하기를 일삼는다. 나의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쩌면 부모님이 교회를 다녔으면 그렇게 무리지어서 비난하고 모욕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일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들은 모두 예수님이 먼저 당하신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중에 가장 낮은자를 예수님 대하듯 하라고 하셨는데 가장 낮은사람이 예수님이다. 정죄하고 비난하고 모욕하고 배신하고 조롱하고 모든 것을 받으시면서 대적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수는 없으나 예수님 처럼 살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모욕당하고 업신여김 당하며 비난받고 거짓증거 당하기 쉽다. 가해자들이 아무것도 보복당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그런것들이 교회에서 일어나다니 나는 믿을수가 없다. 나는 보복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하튼 혼자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많은 고난중에 교회를 떠나기 쉽다.

그래서 그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가 비록 아동부는 쫓겨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그 아이만은 내 제자를 삼아 함께 예수님 말씀을 배워가고 싶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마음을 주심을 참으로 감사한다.

 

간증문

염창교회에서 간증 릴레이가 진행중이다. 1교구 2교구 3교구 순서대로 매 예배마다 한명식 설교후에 간증자가 앞에 나와서 간증을 한다.

나는 그런 부담스러운 자리에 설 용기가 없지만 오래전 받은 은혜에 대해서 청년부에서 간증을 하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하여서 하는 수 없이 이 기회를 통해서 오래전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간증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해서 간증문을 적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과연 간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서빨리 간증문이 완성되기를.ㅠ.

 

안녕하세요. 염창교회 박진호 집사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매우 떨려서 말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고 간증을 하고 싶었기에 이자리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던 것은 2009년에서 2012년 동안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013년 초에 시험을 당하고 이 말씀이 마음에 들어 왔습니다.

그때는 무슨말인지 알지 못했으나 지금와서 생각하니 이 간증을 하려고 했던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증과 전도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열매맺는 나무가 되어야 했지만 저는 부끄러음과 소심한 성격탓에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제가 정식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때 부터인 것 같습니다. 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매주 아침마다 저희집 앞에서 2~30분간을 기다리며 저와 같이 교회를 나가준 덕분에 제가 교회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두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과, 교회를 다닌 후,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이렇게 세번의 삶이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안의 폭력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나를 키울 여력이 없어서 낙태를 하기위해 병원에 갔는데 낙태비가 부족하여 돌아왔고 후 조산으로 저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집에 와서 돈을 많이 훔쳐가지고 나가셨고 어머니를 많이 때렸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집 자식은 아버지를  살갑게 잘 반기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많이 혼냈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는 어머니가 집 베란다 천장에 붙은 빨래 건조대에서 줄넘기로 목을매어 죽을뻔한 적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잘 웃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중학생때 친구의 전도가 없었다면 저는 나중에 커서 비행 청소년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교회를 나왔을때는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다 화내고 때리고 권위적인 사람들인지 알았는데 교회의 선한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집에 잘 계시지 않았습니다. 가끔 도둑처럼 들어와서는 장농을 뒤지고 나가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월세내는 날이나 어머니 월급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종종 어머니와 아버지는 심하게 싸우셨는데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가려는 것을 어머니가 말리다가 아버지에게 많이 맞으셨습니다.

제가 기어다닐 적에는 어머니 회사를 못가게 하겠다며 방문에 못질을하고 잘 되지 않자 까스통을 가지고 와서 다같이 죽자며 협박을 하다가 가셨는데 아마도 돈을 가지고 나가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치원 다닐 적에는 자고 있다가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와 챙그랑 소리가 들려서 깨어서 나가보았는데 아버지는 막 계단으로 올라가셨고 어머니가 아무일도 아니라고 들어가서 더 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머니 이마 위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고 뚜껑이 깨진 냄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내가 생각 하기에는 아무 이유 없이 맞았고 한마디라도 하면 더 맞았고 한참 맞다가 잘못했냐고 물을때 “네”라고 대답할때까지 맞았습니다. 중간에 어머니가 말리시면 또 부모님이 싸우시는데 그게 너무 무서워서 웠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집을 사서 염창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를 오기 전에 아이들도 컸으니까 이제 당신도 잘하라고 부모님이 하시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도 일을 열심히 하시고 가정에 충실하셨습니다.

이사를 오고 대출 빚 때문에 어머니가 무리를 하셨는지 초등학교 4학년때 어머니가 야근을 하며 졸다가 오른손을 크게 다쳐서 병원에 수개월간 입원을 했습니다.